읽다

170723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위스타 2017. 7. 23. 02:42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마네뜨 양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아버지를 찾지만 아버지는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는 상태다. 그러던 중 한 재판에 참관인으로 참여하게 되고 다네이라는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결국 그는 무죄로 풀려나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다네이는 마네뜨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 그렇게 잘 살던 중 아이가 여섯살이 되던해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난다. 이때 다네이의 하인이 프랑스 감옥에 투옥되어 있다는 소식을 접한 다네이는 그를 구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프랑스로 가자마자 시민들에게 잡혀 감옥에 가게 된 다네이. 이 소식을 가족들 모두 알게 된다. 가족들은 모두 프랑스로 와서 그를 구하기 위해 힘쓰고 마네뜨의 아버지의 명성으로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구속된다. 마네뜨의 아버지가 소송을 걸었다는 것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마네뜨의 아버지는 과거 의사 생활을 하던 도중 한 귀족을 만나게 된다. 그 귀족은 그들 보다 낮은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마네뜨의 아버지는 이 집안에 언젠가는 마땅한 처벌이 있기를 바란다는 글을 젊은시절 썼었다. 이것이 누군가에 의해 재판에서 밝혀졌는데, 알고보니 다네이가 그 집안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24시간 후 그는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때 재판에 도움을 줬던 카터가 나타나서 그를 구해주고 자신이 대신 단두대 앞에 서는 길을 택한다.


  드파르주 부인의 집안은 오랜기간 다네이 집안 사람들에게 억압을 당해왔다. 이에 복수심을 갖고 살아가고 그래서 그가 구속 되었을 때 그의 죽음을 간절하게 바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무고한 희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네이는 그들을 억압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그러한 폭력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단지 자신의 집안 사람들이 그들에게 폭력적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집안 사람들이 잘못한 죄로 자신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사형판결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드파르주 부인의 집안 사람들이 당했던 폭력과 무엇이 다를까? 어떠한 죄 없이 당하는 폭력과, 어떠한 죄는 없지만 가족들이 지은 죄로 인해 당하는 폭력은 그 느낌(?)이 비슷한 것 아닐까? 

  

  그리고 사회가 변해서 과거 높은 계급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낮았던 계급은 높은 계급으로 변했을 때, 과거 그들이 당했던 것을 똑같이 되갚아 주고 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탄압한다면 그 사회는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마치 조지오웰의 동물농장과 비슷한 것 아닐까? 그리고 조씨고아처럼 계속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는 것 아닐까? 결국 큰 틀에서 본다면 사회는 변화하지 않았다. 그럼 진정으로 변화된 사회는 무엇일까? 모두 같이 평화롭게 사는 사회일까? 그런 사회가 가능할까? 내 생각에는 현실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사회는 높은 계층과 낮은 계층의 갭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시소처럼 계층이동이 가능한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과거에 내린 정의로운 행위(마네뜨 박사의 글..)가 자신 또는 자신의 지인의 발목을 잡게 된다면 마음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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